선을 따라 걷는 경주 뚜벅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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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수록 보이는 것들 - 경주를 걷다 



경주는 발자국으로 전국 구석구석을 색칠하고 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경주는 신화 · 역사적 사실 등 과거부터 전해져 오는 수많은 이야기가 글과 유물 그리고 능으로 곳곳에 가득합니다. 현재 경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거리인 황리단길은 수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채워져 있습니다. 경주 곳곳을 걷다 보면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지역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는 건 자연스러운 순리입니다.


걷는 길의 모양이
눈에 계속 따라오는 능들의 모양이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첨성대의 모양이
경주의 지붕이 되고 있는 토함산의 모양이
그리고 과거부터 미래까지 쭉- 연장선을 달리는 지역의 매력이
여정을 만드는 발자국이
선(線) 그 자체인 경주에서 봤던 다양한 순간들을 소개합니다.
 


"경주는 주요 여행지 간의 거리가 도보 거리이고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어 뚜벅이 여행 입문으로 가기 좋은 지역입니다."





능 위에 사람이?


일찍 눈이 떠져 오전 9시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왔습니다. ’ 숙소에서 뒹굴면 뭐 하나 대릉원 산책이라도 가자!’ 적당히 시원한 공기가 감도는 가을 날씨 속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대릉원으로 향했습니다.


"숙소 위치는 황리단길 도보거리에 잡는 것이 좋아요. 황리단길을 자주 걸을 가능성이 높고 황리단길 옆으로는 첨성대 그 뒤로 국립중앙박물관까지 걸어갈 수 있어 효율적입니다."


가본 적이 있는 대릉원이라 익숙한 공원을 걷는 것 같은 산책을 할 줄 알았는데 대릉원 안으로 들어간지 1분 만에 펼쳐졌어요.



언덕만큼 거대하고 높은 능 위로 올라가 잡초를 정돈하는 장면을 봤기 때문입니다. 둥근 곡선 위에 올라선 분들이 능의 크기 대비 작게 보여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장난감 군인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귀여우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마치 언덕처럼 나오는 능도, 능 위로 올라가 정돈하는 성함 모를 분들의 일상도 오래 시선을 머물게 했습니다. 경주에 온 게 열 번은 되는 것 같은데도 한 번도 수많은 고분들을 어떻게 유지 보수하는지는 생각한 적이 없었지 뭐예요. 경주가 언제나 신비로운 모습을 유지하는 데에는 보기보다 많은 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능과 능 사이를 걸었습니다.





핑크뮬리와 팜파스


경주를 여행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핑크뮬리. 알고 보니 유명한 핑크뮬리 군락지였더라고요! 여행 중에 핑크뮬리 군락지를 알게 되어 찾아간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던 건데, 이른 오전이라 사람도 많지 않았어요. 야호! 풍경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신나게 카메라 셔터를 누른 시간이었습니다.



평소 핑크뮬리에 큰 관심이 있지는 않았는데 또 이렇게 진하게 물들어 절정을 보여주는 분홍빛 안개 같은 풍경을 보니 좋아하는 게 하나 더 늘어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경주 첨성대를 배경으로 둔 핑크뮬리 풍경은 꼭 핑크빛 바다 중앙에 있는 등대 같기도 했어요.



경주여서 볼 수 있는 풍경 옆으로는 또 한 조각의 가을 풍경이 시선을 붙잡았습니다. 단풍 시즌이 오기 직전인데도 울긋불긋함이 충분히 드러나는 나무들과 사람보다 훨씬 키가 큰 팜파스 나무들. 그 사이를 걷는 시간은 가을의 낭만 중 하나입니다. 채도가 낮아서 더 계절감이 드러났던 풍경들이었어요.


"사람이 많이 없는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보고 싶다면 최대한 이른 오전에 봐야 합니다. 오후에 지나가면서 보니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 찍기도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화룜점정은 초승달

경주는 유독 해가 진 뒤에도 볼 거리가 많은 지역입니다. 동궁과 월지 · 첨성대 등 야경을 위한 조명이 들어오는 곳이 많아서 혼자 여행할 때도 근처에 숙소를 잡고 도보로 다녀오는 편입니다. 이번 경주 여행에서는 황리단길을 거쳐 첨성대까지 걸어가 야경을 보는 게 계획이었는데요. 황리단길을 지나 첨성대 방향으로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또 하나의 아름다운 광경을 발견했습니다.


일몰의 여운이 담긴 하늘과 능의 조합은 동화책의 어느 한 페이지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아니면 어느 소품샵에서 볼 법한 포스터의 그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름다운 풍경에 “우와” 감탄사를 추가하게 한 건 다름 아닌 ‘초승달’입니다. 얇은 눈썹달이 능 위에 있는데 이건 정말 합성이 아니면 나올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며 내적 호들갑을 떨게 했어요.



어디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이제 여행자들이 갈만한 길은 다 아는 곳임에도 아직 못 본 풍경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한 여행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이 무뎌지지 않는 즐거움인가 봅니다. 걸어서 여행했기에 볼 수 있었던 이 모든 여행을 여러분들도 올가을, 발견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을 뚜벅이 여행을 찾고 계신다면 경주 어떠신가요?


“가을 뚜벅이 여행은 경주지!” 단언했던 말은 이번에도 들어맞았거든요.



기획·취재: 뚜벅이는 윤슬 / 트리퍼

사진·자료: 뚜벅이는 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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