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식사의 팔판동 골목
서울에서 가장 조용하게 걷는 골목, 팔판동. 삼청동과 북촌의 틈 사이, 고즈넉한 숨결을 품은 이 골목은 마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습니다. 과거 조선의 고위 관료였던 판서 여덟 명이 살던 동네라는 이름처럼, 팔판동은 지금도 묘한 품격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산책길을 따라 한옥과 현대적인 갤러리가 공존하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한 끼 식사와 예술 한 장면을 함께 마주하게 됩니다. 이번 큐레이션은 팔판동을 대표하는 ‘김밥 맛집’과 ‘전통 예술 갤러리’를 담았습니다.
서울 김밥 맛집으로 입소문 난 | 팔판김밥
줄 서서 먹는 김밥집이 이토록 조용한 골목에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소개되며 주목받은 팔판김밥은 단 네 개의 좌석과 간단한 메뉴만으로도 서울에서 손꼽히는 김밥 맛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팔판김밥은 기름기를 최소화하고, 갓 볶은 어묵, 당근, 지단, 깻잎 등 재료의 조화로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자랑합니다. 입 안에 퍼지는 깻잎 향과 단맛 없이 정제된 구성은 요즘 김밥 시장의 고급화 흐름 속에서도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느낌입니다.
김밥 외에도 토스트 메뉴가 은근히 인기입니다. 얇게 썬 채소와 계란을 전처럼 부쳐 만든 팔판토스트는 설탕과 케첩, 머스타드 소스를 곁들여 놀라울 만큼 정겹고 맛있는 조화를 만들어냅니다. 매장은 작지만 입소문은 크고, 포장 위주의 운영이지만 김밥을 들고 팔판동 골목을 걷는 그 자체가 하나의 경험이 되기도 합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운영하며, 월요일은 휴무이니 방문 전 참고해주세요.
팔판동 골목, 한국적 아름다움의 정수 | 오매갤러리
팔판동을 걷다 보면 문득 조용한 외관의 갤러리가 시선을 끌게 됩니다. 바로 ‘오매갤러리’입니다. 이곳은 한국의 전통공예, 나전칠기, 단청, 자수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이며 전통과 현대, 공예와 미술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김이숙 대표는 단순한 전시를 넘어, 세계 무대에 한국적 감각을 선명히 드러낼 수 있는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깊은 예술 경험을 제공합니다.
지하부터 2층까지 전시 공간을 다채롭게 구성한 오매갤러리는 마치 한옥의 깊숙한 마루처럼, 조용한 감동을 전합니다. 최근에는 오왕택, 김종량, 곽복희 작가의 개인전을 비롯해, 색동과 민화 등을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전시도 이어졌습니다. 갤러리를 나와 팔판동 골목을 다시 걷다 보면, 전통의 아름다움이 새삼 가까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술을 좋아한다면, 혹은 팔판동을 더 깊이 느끼고 싶다면 오매갤러리는 꼭 들러야 할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