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명처럼 다가온 남해
사람은 인생에 세 번의 기회를 만난다고 합니다. 그 기회는 종종 아주 우연한 장면으로 시작되기도 하죠. 위금실 님에게는 2021년의 어느 여름, ‘남해 6주살이’가 그랬습니다. 서울에서 다양한 일을 전전하던 시기, 확신도 방향도 없이 흘러가던 시간을 멈춰 세운 건 한 장의 SNS 광고였습니다. “일도 없는데, 가도 되나?” 머뭇거렸던 고민은 남해에 다녀온 친구들의 “일단 가봐”라는 말로 밀려나고, 그렇게 시작된 남해살이.
그 여름 이후, 그녀는 더 이상 서울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바다와 바람,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운명처럼 다가온 새로운 기회. 지금은 남해의 대지포 마을에서 ‘금해민박’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삶의 단편들이 모여 만들어진 나
경북 상주에서 자란 위금실 님은 수도권으로 대학을 진학해 만화일러스트를 전공했지만, 졸업 후 그림을 그리는 일보단 공연 기획, 디자인, 사회적 기업 활동 등 여러 일을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주로 어떤 일을 했는지 물으면, 솔직히 대답하기 어렵더라고요. 뭐든 조금씩 해봤거든요.”
서울에서의 시간은 늘 분주했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쌓아온 경험들이 단절되고 흩어진 느낌이었습니다. 남해에 와서야 처음으로 ‘내가 해온 일들이 하나의 결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합니다. 그녀는 지금도 ‘디자이너’나 ‘기획자’로 자신을 정의하진 않지만, 하고 싶은 일에 이름표가 필요하진 않다는 걸 배워가는 중입니다.
금해민박, 이야기가 이어지는 공간이 되길
‘금해민박’은 위금실 님과 남편이 처음 함께 운영하게 된 숙소입니다. 원래 마을 주민이 오랫동안 운영하던 민박이었지만, 6주살이 프로그램 종료 이후 자칫 문을 닫을 뻔했던 공간을 다시 이어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시작은 쉽지 않았습니다. 운영 제안을 처음엔 거절당했고, 시아버지의 도움으로 임대를 겨우 성사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이 마을에 계속 살 건지… 믿음이 없었던 거죠. 돌이켜보면 제가 너무 조급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가 이어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름은 그대로 ‘금해민박’을 유지했습니다. 로고 디자인부터 실내 인테리어, 정화조 교체까지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낸 그녀는 지금도 “너무 꿈이 컸던 건 아닐까”라는 불안을 안고 하루하루를 운영해가고 있습니다.
도시의 기회보다, 시골의 가능성에 기대어
서울에서 치열했던 경쟁 속에선, 나의 재능과 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가 평가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남해는 달랐습니다. “여기선 내가 잘하려고 하면, 누군가는 꼭 기회를 주세요.” 경쟁보단 연결이, 불안보단 실험이 가능한 곳. 그녀는 지금도 디자인과 브랜딩, 라디오 제작, 손글씨 엽서, 숙소 운영까지 다양한 일을 겸하고 있지만, 그 모든 일의 중심엔 ‘나답게 살아보기’라는 태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한 이 태도를, 더 많은 청년과 나누고 싶어 합니다. “남해는 청년에게 기회를 주는 지역이에요. 저처럼, 준비된 사람에겐 더 많이요.”
지금의 목표는 금해민박을 잘 운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금실 님은 숙소를 단순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자신처럼 방황하던 누군가가 이곳에 와서, 새로운 계기를 얻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요즘은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라디오 방송, 공간 브랜딩, 손글씨 작업… 남해에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묶어 “저를 써보세요”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기회는 언젠가 다시 올 테니까요. 준비만 잘 해놓는다면.
“조금 느려도 괜찮아요. 나는 내 속도로 잘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녀의 오늘은, 그렇게 다음 기회를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 해당 콘텐츠는 남해관광문화재단과 트리퍼가 함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