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간판 아래 펼쳐진, 대한민국 유일의 헌책 골목
부산 중구의 한 골목. 좁고 구불구불한 그 길목에 들어서는 순간, 콧등을 스치는 건 낡은 종이에서 피어오르는 책 냄새입니다. ‘보수동 책방골목’. 국내 유일의 헌책방 밀집 거리이자, 2019년 ‘부산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 자산입니다. 한국전쟁 피란민들이 생계를 위해 노점을 열며 시작된 이 골목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의 궤적을 담고 있습니다. 교과서부터 문학 전집, 사전과 만화책까지, ‘없는 게 없다’는 말이 진심으로 다가오는 곳. 지금도 손으로 책장을 넘기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전국에서 책을 찾아온 골목
1950년대 한국전쟁 시기, 부산이 임시 수도가 되던 시절. 피란 학교 등하굣길에 놓인 골목에 미군 잡지, 만화책, 고서들을 쌓아놓은 노점이 생겨났고, 이내 ‘책방거리’로 발전했습니다. 당시엔 출판문화가 부족하고 서적 가격이 부담됐던 시대. 헌책은 학생들에게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숨통’이었습니다. 1990년대엔 전국에서 책을 찾아 이 골목을 방문했고, 수십 곳의 책방마다 쌓인 책더미와 상인들의 목소리로 가득했죠. 그 골목에선 책이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필요’ 그 자체였던 시절의 풍경이 남아 있습니다.
요즘, 레트로 스냅을 찍으러 오는 핫플 골목
보수동 책방골목은 지금, ‘책’뿐 아니라 ‘풍경’을 찾는 MZ세대의 성지로도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간판, 색 바랜 책 더미, 비에 씻긴 시멘트 골목… 이 모든 요소가 요즘 감성 스냅 사진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배경이 되죠. 실제로 SNS에서는 ‘#보수동책방골목’ 해시태그와 함께 책을 든 채 포즈를 취한 감각적인 사진들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일부 작가들은 이 골목을 배경으로 포트폴리오 촬영을 하기도 합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더 이상 책만 파는 곳이 아닙니다. 골목을 빠져나오면 바로 이어지는 국제시장, 깡통시장, 남포동은 부산 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하죠. 자갈치역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위치는 여행자의 동선을 고려할 때도 안성맞춤. 부산시는 이 골목을 관광자산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지원을 늘리고 있으며, 단순한 책 유통을 넘어 ‘문화 체험’으로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골목이 가진 진짜 가치는, 누군가의 학창시절과 역사의 일부였던 ‘시간의 향기’를 지켜내는 일 아닐까요. 디지털 시대에도 종이책이 가진 감성은, 결국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