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카타콤바'라 불린 교우촌
‘내륙의 제주’라 불릴 만큼 평화롭고 서정적인 풍경, 그리고 그 속에 숨은 한국 천주교의 깊은 역사. 당진 신리성지는 조선 시대 박해기, 가장 큰 천주교 공동체가 자리했던 ‘믿음의 땅’입니다. 드라마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실제로 순교자들이 머물고, 기도하고, 살아냈던 그 공간. 한국 유일의 박해시대 주교관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에는 다블뤼 주교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순례길이란 단어가 이토록 잘 어울리는 곳은 드뭅니다.
신리성지는 단순한 종교적 유산이 아닌, 탄압 속에서 피어난 조선 천주교사의 실질적인 거점이었습니다.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들이 비밀 입국해 활동했던 비밀 교우촌, 선교와 번역, 출판이 함께 이루어졌던 이곳은 조용한 외양과는 달리 혁명적인 신앙의 불씨가 타오르던 장소였습니다. 순교자 다섯 성인의 이야기를 담은 순교미술관은 로마 카타콤바를 형상화해 지하로 내려가는 구조로 조성되었으며, 곳곳에 마련된 작은 경당들은 잔잔하지만 깊은 감동을 전합니다.
황금 들판을 보며 마무리하는 순례의 시간
성지 안쪽에는 폐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치타 누오바’ 문화쉼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새로운 도시’를 뜻하는 이곳은 신리성지의 마지막 여정으로 향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쉼과 마주함을 제공합니다. 드넓은 논과 들판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다 보면, 그저 과거를 돌아보는 장소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비추는 내면의 순례가 시작되는 듯합니다. 미술관과 카페, 쉼터가 조화를 이룬 치타 누오바는 신리성지의 영성과 감성을 모두 마무리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순례자, 여행자가 환대받는 당진의 명소
신리성지는 종교인의 발걸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닙니다. 조선의 역사, 서정적 자연, 아름다운 건축과 조용한 문화 공간이 어우러진 이곳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순례지입니다. 깊은 사색의 여정을 원하는 여행자에게, 또는 그저 고요한 시간을 찾는 이에게도, 이곳은 늘 같은 온도로 머물러 있습니다.
* 위에 사용된 이미지는 당진시 공식 블로그 이미지를 후가공없이 그대로 사용했습니다.